국내 배우 중에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설경구.
그의 출연작은 모두 다 보았음에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던 건. 배우 설경구를 세상에 알린
이창동감독과의 콤비 박하사탕+오아시스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때를 놓친다는 것, 타이밍을 놓친다는 건 1년, 2년, 10년, 12년이 지나도 겉잡을 수가 없는 것이서. 이번에 본 이유도 결국은 "꼭 봐야하는데.."라기 보단 "오랜만에 설경구의 연기가 보고 싶다."라는 단순한 동기였으니.
많은 이들이 "설경구의 연기는 언제나 제자리"라고 평을 한다. 공공의 적으로 시작하여 그의 필모그래피를 채운 수많은 영화들을 몇 번씩이고 본 나는 "그건 그 배우의 아이덴티티이고 어차피 누구나 다 그러하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했지만. 박하사탕을 보고 난 후에 어렴풋이 어떤 뜻으로 그런 평들이 나왔는지 알겠더라.
후에 그가 했던 수많은 연기들은 모두. 박하사탕에서 다 보여줬다. 강철중은 물론이고, 어떤 영화에서든지. 데뷔작에서 모든 걸 다 보여줬으니, 뭔가 다른 걸 기대하는 평론가들에게는 곱게 보일리 만무하다. 하지만, 억울하게도(?) 박하사탕에서 보여준 게 너무 굉장한 것이어서, 사실 그 이상을 배우에게 바란다는 건 가혹한 처사일게다.
1979년.20대 김영호는 다같이 떠난 야유회에서 첫사랑 순임이와 설레는 사랑을 나누고,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과 하늘만 봐도 웃음을 짓는 풋풋함이 있었다.
1980년. 김영호는 군입대를 하고. 광주항쟁에 투입되어, 총을 맞고. 또. 총을 쏜다. 그렇게 그의 인격은 부서져 간다.
1984년. 형사가 된 김영호. 군대 시절 다쳤던 다리를 절뚝거리는 신창형사. 선배들을 따라 고문을 시작하게 되고, 폭력에 지배당하고. 그리고 그의 첫사랑 순임이를 떠나보낸다.
1987년. 어느새 세상에 찌들고 폭력에 찌들어버린 베테랑 형사 김영호. 잠복 근무중에 잠시 들른 어느 시골 다방. 여종업원에게 순임이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
1994년. 형사는 그만 두고 사업을 시작한 김영호. 부인은 운전교습중에 바람을 피고, 이를 책망하는 김영호 역시 비서와 바람을 피지만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형사시절 고문했던 이와의 우연한 만남. 삶은 아름답다고 되뇌이는.
1999년. 모든 걸 잃은 김영호는 자살을 결심하고 권총 한자루를 구입한다. 어느 날 찾아온 남자. 그는 영호의 첫사랑 순임의 남편. 순임이 중병으로 생사의 기로에 있다며 마지막으로 영호를 보고 싶어했다는 뜻을 전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군대시절까지, 그에게 박하사탕을 보냈던 순임이를 떠올리며. 영호는 박하사탕 한 움큼을 가지고 병원을 찾지만 그녀는 의식이 없다. 순임이 앞에서 목놓아 우는 영호. 그리고 순임의 마지막 선물 사진기를 받고 나오지만, 미련없이 4만원에 사진기를 팔아버린다.
1999년. 순임과 처음 사랑을 나눴던 그 장소에 다시 나타난 김영호. 동창들의 야유회날. 20년 전 불렀던 "나 어떡해"를 목놓아 부르던 김영호는. 모든 걸 잃어버린 자신을 후회하고 책망하며. 철길 위로 올라가.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친다.
위의 사건이 역순으로 배치되어 점점 과거로 돌아가는 구성. 1979년 잔디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살짝 흘리는 눈물이 더 마음 아픈. 엔딩.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고 욕하고 책망할 수 있겠나. 격변하는 사회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슬픈 이야기가 참 먹먹하게 담겨 있다. 20대부터 40대까지, 울음과 울분을 토해내고 때로는 수줍음, 때때로 냉소를 보여주는 설경구의 모습에 감탄 또 감탄. 그리고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누구에게나 첫사랑일 것 같은 순임이 문소리. 김영호와는 다르게, 하지만 세월에 변해가는 여자 김여진의 모습까지. 2011년에라도 잊지 않고 봐서 다행이다.
당시에는 무명이나 다름었었던 공형진/김인권의 풋풋한 모습도 볼 수 있다^(김인권이 천만 영화의 배우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박하사탕의 영화음악 역시 무척이나 아름다워 오래도록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