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OP함 들어볼까요六十二
倉木麻衣 -쿠라키 마이-
우타다 히카루의 최대 라이벌이었고 우타다 못지않은 괴물급 활약을 펼쳤'던' 倉木麻衣
우타다 히카루보다 딱 1년 늦게 데뷔하여 약간 더 나은 외모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비스끄무리한 노래들로 엄청나게 한철장사했던 여가수입니다.
우타다, misia등의 활약으로 일본내에서 R&B열풍이 불고, "본토POP우대".라는 묘한 기류가
형성되어 있었던 1999년 17살의 이쁘장한 소녀가 싱글 Love, Day After Tomorrow로 데뷔,
첫싱글을 130만장 팔아치우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그 정도 노래인지..정말..모르겠음)
이어서 두번째 싱글 Stay by my side와 세번째 싱글 Secret of my heart도 모두 90만장 이상..
판매되고 첫번째 앨범은 350만장을 기록..트리플 밀리언!..아무리 당시 일본음반시장이 호황이다..
라고 해도..이상할 정도(우타다의 1000만장도 있긴 하지만^^;)의 열기였습니다.
이후의 싱글들도 40만장 이상, 그리고 두번째 앨범도 130만장이 판매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지만!
역시..거기까지..R&B열풍이 잦아들 무렵 倉木麻衣의 인기도 서서히 식어가고...
싱글은 10만장이 채 넘어가지 못하고 앨범도 베스트를 제외하곤 밀리언은 커녕..50만장도 힘든..
그저 그런 여가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라이벌 우타다 히카루는 여전히 괴물같은 활약을 펼치는
것에 비해..여러모로 끝까지 안좋게 비교당하는군요...
음악계의 조류가 바뀌고, 전성기를 함께했던 프로듀서들이 떠나고..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99년 2000년 당시의 포스가 워낙 괴물급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추락한 것은 의외이긴 합니다만..
倉木麻衣의 데뷔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왜 이런 노래가 이렇게 인기인 거야.."라고 느꼈던 사람이..
저뿐만이 아니었다면 수긍할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재밌는 얘기를 하자면 倉木麻衣의 아버지가 영화감독인데..딸과 사이가 안좋다고 합니다.
한창 딸이 인기를 끌었을 때 딸과 아주 닮은 AV여배우를 기용하여 '倉本麻衣'라는 AV영화를 만들었
다고 하네요..ㅋㅋ倉木麻衣와倉本麻衣는 글자 한 획차이로 '쿠라키 마이' '쿠라코토 마이'가 됩니다.
암튼 딸을 이용해서 그렇게 뜨고 싶었던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