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한
파수꾼 Bleak Night
laser RAY
2011. 10. 5. 09:40
영화를 많이 좋아하지만 독립영화를 찾아서 본다던가. 하진 않는다.
그냥. 재밌다더라. 하면 보는 거고. 재밌을 것 같네. 하면 보는 거고. 재밌을까. 하면 본다.
그리고 한 영화에 삘이 박히면, 감독과 배우 중심으로 거미줄을 치는 편이다.
파수꾼은. 유수의 언론에서, 평단에서 "좋은 영화임!" 하고 투떰즈업을 외칠 때도 그러려니 했던 영화이긴 했다.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정도. 볼까? 정도.
그러다. 시간이 흘러 고지전에서 배우 "이제훈"을 보았고, 이 묘하게 잘생긴 젊은이의 영화들이 꼭 보고 싶어졌다. 마침 그게 파수꾼이었다.
각설하고.
참 좋은 영화였다. 왜들 그렇게. 다들 그렇게. 좋다고 하는지. 엔딩크레딧 올라갈 즈음이면.
그리고 저마다의 상황과 경험에 맞추어 보겠지만, 남고를 다니면서 3명, 혹은 4명 정도의 맞춤동성 친구들과 매일 하릴 없이 이빨까며 자라왔던 나같은 아해들에게는 더 꼭꼭 박히는 영화였다는 것. 한 친구는 이 영화를 보고
"야 별로 재미 없더라 그게 뭐냐 요즘 애들이 누가 그러냐" 라고 하다가...
"아, 근데 우리 중학교 때 내가 이런 일이있었는데 blah blah..영화 보니까 그 생각 나더라"
...
너 임마 영화 제대로 잘 본거다.ㅎ
갑자기 죽음을 택한 아들의 흔적을 찾아, 친구들을 수소문하는 아버지.
친구들을 만나 얘기를 들을 수록, 아버지가 알던 아들과 학교에서의 아들은 참 다른 아이이다. 사실. 다들 그렇지 뭐.
기태, 동윤, 희준(배키)은 늘 함께하는 고등학생 친구. 기태와 동윤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고 희준은 고등학교에 만난. 셋은. 한창 때의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과 다름없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그런 친구들.
- 모두 고등학생을 연기했지만 촬영당시 이제훈은 27, 서준영과 박정민은 24살.-_-
좋아하는 여자문제, 집안 이야기 등에서 묘하게 엇나가기 시작하는 기태와 희준. 기태는 학급에서도 일진으로 군림하며 진심과는 상관없이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마음이 여린 희준은 상처만 받게 된다. 결국 둘은 돌이킬 수 없이 틀어지게 되고.
"난 널 한 번도 친구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 희준의 전학.
그리고 다시 동윤과 기태의 반목. 왜 이렇게 되어버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리고 알 것 같고 사과도 하지만 더 나빠지기만하는 상황에 당황하는 기태.
"단 한번도 내 친구였다고 생각한 적 없어.."
다시 듣게 되는 그 말. 그 나이 때의 거의 전부를 잃어버린.
"니네만 있으면 돼! 다른 거 필요없어" 라고 했던 치기어린 시절.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들이 나열될 수 밖에 없는 영화이기도 한데.
먼저, 난 학교 다닐 때 영화에서 "기태"와 같은 아이를 정말 싫어했다. 가장 경멸했다고나 할까. 자기가 뭐나 된다는 듯이 교실 뒷자리에서 몇 몇의 똘마니들과 함께 반의 평화를 위협(!)하는 녀석들. 사실 그렇게 애들 괴롭히며 안하무인이었던 녀석들이 크면서 많이 변해서 "어른"이 되었다며.."그 땐 어려서 그랬지 모" 라고 하는 꼴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뭐. 이미 지난 일을 어찌하겠냐마는. 니네가 힘들게 했던 이들에겐 평생 죄송하게 살아라. 라는 생각.
어쨌든 그런 나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 묘하게 "기태"에게 가장 동정이 갔다. 그러면 안되지 그러면 안되지. 어린 마음에 본인도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떻게 보면 가장 여린 그에게 친구들은 해선 안될 말을. 두 번이나. 너무 차가웠다. 한 사람은 그대로 떠나서 잊고 살고, 한 사람은 죄책감에 잊고 살지 못한다. 어쨌든 그렇게 둘은 친구를 떠나보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조금만 지나면 몇 년만 지나면 정말로 "그 떈 그랬는데" 하면서 욕하면서 툭툭 치면서 웃으면서 얘기할 날이 올거였다. 왜 날 선 말로 그래야만 했을까.
영화도 좋았지만, 그리고 물론 영화가 좋았다는 얘기에 포함되는 거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았어서. 보는 내내 감탄. 먼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 이제훈.
류승범(목소리도 살짝)+이선균+박해일....이라는 묘한 마스크에 선함을 갖춘.
요즘 고지전에 이어 삼성카메라 CF로 훈남으로 등극. 했는데, 지금까지의 영화성향과 다르게 잘빠진 로맨틱 코메디에서도 만나보고 싶은 배우.
그 외에 동윤역을 맡은 배우 서준영은 여러 드라마에 얼굴을 비춘 듯 하나. 드라마를 보지 않은 관계로 신선. 2011년 하반기에 드라마 최대 기대작인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나온다고 하니 이왕 보려고 마음먹은 드라마에 좋은 배우가 나오는구나 싶다.
10대의 콤플렉스를 잘 드러낸 희준역의 박정민 역시 실제 "고딩!"같은 느낌이어서 좋았다. 독립영화에만 출연하는 듯 한데(필모그래피를 보니)언젠가 또 스크린에서 보겠지.
또 좋았던 배우는 동윤의 여자친구이자 갈등의 촉매제였던 세정역의 이초희
고등학생으로 나왔지만 역시나 23살의 아가씨.
이제 영화 두 편을 찍은 듯 한데, 앞으로도 자주 만났으면 한다.
다양하게. 쓸쓸한 장면이 많았던 영화 중에서도, 특히.
두 어린 남녀의 헤어짐이 참 가슴에 남았던 장면. 손목시계. 이별.
파수꾼을 만든 이는 82년생의 윤성현 감독님.
젊은 만큼. 좋은 영화 많이 볼 수 있었음 한다.
난 좋기만한 영화는 싫다. 재미가 없으면 그런 걸 느낄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파수꾼은 나에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나게했던 좋은 영화였음..과 동시에.
재밌는 영화였어서 다행이다.